AI 시대 일자리 (법조계, 컴공, 신입채용)
국내 10대 로펌의 신입 변호사 채용 규모가 2년 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제 언니는 조카를 법조인으로 키우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했고, 제 지인은 자녀를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진학시키기 위해 아낌없이 지원했습니다. 두 아이 모두 원하던 학과에 입학했지만, 졸업 후 펼쳐질 취업 시장의 모습은 부모 세대가 경험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를 겁니다.
로펌과 회계법인, 신입 채용 급감의 배경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한 경제학회에서 윌리엄 빛 전 미국 노동계 국장은 충격적인 발언을 던졌습니다. 로펌들이 이제 신입 변호사를 뽑아 가르치는 대신 인공지능에게 법률 리서치를 통째로 맡기고 있어서, 신입의 진입로 자체가 완전히 봉쇄됐다는 겁니다. 여기서 법률 리서치란 판례를 찾고 분석하며 법률 문서 초안을 작성하는 변호사의 기초 업무를 의미합니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현직 변호사들이 이미 AI를 활용해 판례를 분석하고 서면 초안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저연차 변호사들이 담당하던 기초 업무가 AI로 대체되면서, 이제 막 면허를 딴 신입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회계사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소위 빅 4라고 불리는 국내 최대 회계법인들이 신입 채용 규모를 30% 이상 줄인 건 업계에서 공공연한 사실입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이들은 AI 도입을 통해 매년 수만 시간 이상의 업무 시간을 절감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수십 명의 회계사가 1년 내내 매달려야 하는 업무량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제가 직접 업계 종사자들을 만나 들어보니, 이제 회계사는 숫자를 맞추는 기술자가 아니라 AI가 뽑아준 방대한 데이터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소수의 관리자로 역할이 완전히 재편되고 있었습니다.
컴퓨터공학 전공자마저 흔들리는 취업 시장
더 소름 돋는 건 이 현상이 문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취업 시장의 절대 권력이었던 컴퓨터공학 전공자들의 위상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링크드인의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부터 꺾이기 시작한 컴공 전공자들의 취업 성과가 이제는 소위 취업이 어렵다고 여겨졌던 인문학 전공자들과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왔습니다(출처: LinkedIn 경제연구소).
코딩이나 시스템 설계 같은 전문 영역조차 생성형 AI(Generative AI)가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비싼 돈 들여 신입 개발자를 뽑아 가르칠 이유가 사라진 겁니다. 여기서 생성형 AI란 텍스트, 이미지, 코드 등을 스스로 생성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말합니다.
심지어 가장 보수적이고 난공불락이라 여겨졌던 의료계조차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국내외 다수의 공공의료 기관은 이미 AI 기반 응급의료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영상 판독의 핵심 역할을 AI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덕분에 환자의 대기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었지만, 그 대가로 의사라는 직업의 희소성은 예전 같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국은행조차 보고서를 통해 의사를 인공지능 노출도가 가장 높은 직군 중 하나로 분류하며 거대한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사라진 사다리, 봉쇄된 진입로
결국 이건 단순히 일자리가 줄어드는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사다리라고 불렀던 경험의 통로가 끊어지고 있다는 게 진짜 공포의 핵심입니다.
그동안 신입들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처리하면서 실력을 쌓고 베테랑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기초적인 일들을 AI가 몽땅 가져가 버렸으니,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디디려는 청년들에게는 올라갈 사다리 자체가 원천적으로 없어진 셈입니다.
요즘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입사 지원 버튼이 사라졌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돌고 있습니다. 단순히 자리가 줄어든 게 아니라 신입사원이라는 존재 자체가 기업들에게는 일종의 짐처럼 여겨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클로드를 만든 앤스로픽의 CEO는 불과 얼마 전 아주 서늘한 경고를 던졌습니다. 앞으로 5년 안에 신입 사무직의 절반이 AI로 대체될 것이며, 주니어급 인력을 고용해 교육하는 기존의 기업 모델은 완전히 붕괴할 것이라는 예측이었습니다.
노동 시장의 흐름을 분석하는 전문기업 레벨리오 랩스의 데이터를 보면, 지난해 미국 전체의 신입 일자리 공고는 무려 35%나 급감했습니다. 특히 빅테크 기업들의 상황은 더 처참해서, 대졸 신입 채용이 5년 전과 비교해 무려 반토막이 났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AI가 단순 업무를 대체하더라도 신입을 뽑아 키우는 문화는 유지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기업들의 선택은 냉정했습니다.
AI 시대에도 살아남을 직업의 조건
그렇다면 우리는 이 냉혹한 톱니바퀴 아래 그대로 짓눌려야만 하는 걸까요? 사실 역사는 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비슷한 공포를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마냥 부정적인 전망만 있는 건 아닙니다.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훨씬 많은 1억 7천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 일자리는 7,800만 개가 순증가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제 경험상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세 가지 생존 키워드는 현실적으로 와닿습니다.
첫째는 결과에 대해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역할입니다. AI가 판례는 1초 만에 찾아줄 수 있어도, 그 판례를 바탕으로 한 선택이 누군가의 인생이나 기업의 운명을 바꿀 때 그 법적·사회적 책임을 대신 져주지는 않습니다. 결국 어떤 정답을 고를지 결정하고 그 결과에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리더와 전문가의 영역은 인간의 고유 영토로 남게 될 겁니다.
둘째는 인간의 신뢰와 공감을 다루는 서비스입니다. 고액 자산가의 자산을 관리하거나 복잡한 심리를 다루는 일처럼, 사람 사이에 유대감이 본질인 직업들은 AI 시대에 오히려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겁니다. 기계는 지식을 줄 순 있어도 신뢰를 구축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물리적인 정교함이 필요한 현장 전문가입니다. 물론 미래에는 육체를 가진 피지컬 AI가 등장하겠지만, 전문가들은 이 분야가 가장 나중에 대체될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AI가 아무리 천재적인 설계도를 그려내도, 낡은 건물에 복잡한 배관을 수리하거나 현장의 수많은 돌발 변수를 직접 손으로 해결하는 정교한 작업은 로봇이 따라오기 가장 어려운 영역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AI 시대를 두려움보다는 적응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AI를 잘 부리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앞서가는 시대입니다. 그 변화의 흐름을 누가 먼저 올라타느냐의 싸움이 이미 시작된 것 같습니다.
AI는 싸워야 하는 상대가 아닙니다. 대처해야 하는 위기도 아닙니다. AI는 시대의 어쩔 수 없는 흐름이며, 이제는 문명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AI의 역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AI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거부하지 않고 인간을 대신해서 해주고 서비스를 베풀어줄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올 시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첫째, AI가 인간을 지배하려 한다는 프레임은 옳지 않습니다. 그저 AI는 너무나 똑똑한 것일 뿐입니다. 둘째, 인간의 일자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AI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일, 다시 말해 리더나 신뢰를 주는 직업, 정교함이 필요한 전문직을 인간이 관리하는 것입니다. 시대를 빨리 읽고 AI와 공존하는 길을 찾는 사람만이 AI 시대에도 인간의 직업을 유지하며 살아갈 것입니다.